1590년무렵부터 왜가 조선을 침공한다는 불길한 소문이 파다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걱정했으나
조정의 극렬한 당파싸움의 여파로 이순신 장군은 상관의 죄를 대신 받고 백의종군을 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백의종군을 끝내고 낙향하여 고향에 내려갔어도 우국충정으로 편치않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상께서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뛰어난 장수들을 최전선에 배치하고자 하였고, 비변사가 무신들을 불차채용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순신 장군은 정읍현감에 올라 고을을 다스렸었습니다.
그러나 1591년 2월 이순신 장군은 진도군수로 승진되었고, 부임하기전 가리포첨절제사, 이어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초수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임하자마자 전쟁에 대비하여 각진의 실태를 파악하고, 군대와 군량미를 확보하며
거북선을 개발하고 건조하는등 군대를 강화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1592년 5월 26일, 좌수영에 일본군이 침략했다며 원군의 공문이 도착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휘하 병력을 비상소집하여 검열하고 방비를 갖추도록했고 소속 함대를 수영 앞바다에 총집결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이순신 장군은 원균의 도움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당시 원균은 전선과 무기들을 수장시키고 수군 1만을 해산시키고, 육지로 피신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라도,충청도 지방에 이르는 해로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이순신 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수군을 해산시키고 무기들을 수장시킨 원균이 이해가 안됐지만 옥포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이순신 장군은 6월 15일 새벽에 여수항을 출발하였습니다. 판옥선 스물네척, 중형 전선인 협선 열다섯 척, 소형 쾌속선인 포작선 마흔여섯 척으로 구성된 좌수영 함대를 이끌고 원균의 경상우수영의 함대와 합류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함대가 옥포에 정박중인 왜의 수군함선 오십 여척을 발견하였습니다. 선봉장이 돌격을 감행하며 맹렬히 화포 사격을 퍼붓자 기습을 당한 왜의 수군이 혼비백산하며 도망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열을 갖추지 못한 왜의 수군의 퇴로를 봉쇄하고 총통과 화살로 무차별 공격을 퍼부으며 왜의 선단을 해안선 쪽으로 압박하였습니다.
그 결과 왜의 수군들이 산 속으로 도주하였습니다. 7월 8일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 40여척을 거느리고 거제를 출발하여 노량에서 원균과 합류하여 사천 선창에 있는 왜군의 정보를 물어 사천으로 추격하였습니다. 왜군은 상륙하여 산위에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단병접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계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왜군이 배에 승선하여 함대를 쫒아오게 만든 후 바다에서 뱃머리를 돌려 맹렬히 화포사격을 파부었습니다. 특히, 그 선두에 거북선을 앞세웠습니다. 돌격장인 이언량, 이기남이 돌격하며 왜 수군사이로 헤집고 다니고 판옥선들이 후미에서 화포를 퍼부었습니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왼쪽 어깨가 화끈거리며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총탄이 어깨에 박혀버렸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어서 의원을!!" "난 괜찮다. 칼 끝으로 총탄을 파내라" 이순신 장군은 고통을 참고 의연한 모습으로 전투가 끝날 때 까지 더 우렁차게 외치며 전장을 지휘했습니다.
7월 7일 저녁, 이순신 장군은 목동 김천손에게 일본의 와키자가 야스하루의 함대 74척이 견내량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이는 왜군의 주력함대로써 격파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불리한 정황이 더욱 더 불리해질 것이 불보듯 뻔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48척의 전선과 원균의 함선 7척인 총 55척의 배를 거느리고 출진하였습니다. 견내량은 암초가 많아 주력인 판옥선이 운신하기에 좁은 해협이었습니다.
반면, 한산도는 거제도와 통영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 나갈 길도 없고, 한산도는 무인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앞바다로 일본 함대를 유인하여 격멸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적을 유일한 대여섯 척의 함대를 견내량으로 보내 일본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였습니다. 일본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자, 유인하던 함대가 180도로 선회하면서 총포를 쏘아댔고, 대기하고 있던 본대가 적선을 포위하면서 온갖 총포를 적선에 퍼부었습니다. "포격하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라!" 그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였고, 반이상의 적선이 불에 타거나 부서졌습니다. 후방에 있던 여섯척의 배만이 겨우 살아남아 도망갔습니다.
8월 8일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김해와 양산등으로 도주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에 적의 본거지가 된 부산을 직접 공격하려는 계속을 세웠습니다. 8월 24일에 4차 출전에 나셨습니다. 부산으로 향하는 길목인 화준구미에서 큰배 5척, 다대포 앞 바다에서 큰 배 8척, 서평포 앞바다에서 큰배 9척, 절영도에서 큰 배 2척을 만나 전부 바닷속으로 수장시켰습니다. 이윽고 이순신 장군이 부산 앞바다에 이르자 적선 400여척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포격하라!" 우렁찬 고함과 신호연을 올려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패전으로 사기거 꺾인 일본 수군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주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적선 100척을 쳐부수었습니다. 이틀동안 전투를 벌였으며, 모두 부수면 일본군이 돌아갈 방법이 없으므로 일부만 남겨두고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습니다.
아군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신임하던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했다고 부하가 알려왔습니다. 대승을 하였지만 아끼는 부하를 잃었다는 생각에 이순신 장군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1593년 2월 10일 웅천현 웅포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왜군은 승산이 없다는걸 알고 육지에 왜성을 쌓고 버티는 전술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지리한 공방전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소탕하기 위한 전투는 3월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7월, 한산도로 좌수영을 옮겨 전열을 정비하고 돌산도에 피난민들을 위한 터전을 개간했습니다.
8월 15일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견내량에 방어선을 설정하였고 왜의 수군은 거제도의 영등포와 제포 사이를 방어선으로 설정하여 대치하였습니다. 전세가 교착화되고 강화 회담은 지리멸렬했습니다. 전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기근과 전영병이 군대를 괴롭혔습니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 역병까지 겹치니 전장에서보다 더 많은 수천명의 장졸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이 교착화 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에게 적극적으로 공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산으로 출정하였고, 김응서의 63척 과 부산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왜군은 소규모 부대였고 저항하려는 모습도 없었습니다. 날이 저물고 절영도로 후퇴했는데, 이중첩지안 요시라가 찾아와 가토가 조만간 부산 앞바다로 싸우러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순신 장군과 김응서는 회항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회항도중 가덕도에 정박했었는데, 왜군이 기습하여 병사를 죽이고 5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가덕왜성에 포화를 퍼부었고 포로들을 전부 돌려받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회황도중 고니시 유키나가라는 왜장이 이끄는 왜의 수군과 맞닥트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순신 장군의 명성으로 두려워한 왜장은 진군하지 않겠다고 이순신 장군에게 전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이끈 소수의 함대로 상대하기엔 상대의 전선이 많았으며 진이 잘 갖춰줘있어 그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사형을 당할 처지였으나 우의정 정탁의 상소로 사형을 모면하고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 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본진을 찾아가려는 길에 아산 본가에 잠시 머무르며 몸을 추스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석방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배를 타고 올라오던 도중 별세하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임종소식을 들은 이순신 장군은 매우 슬퍼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나 칠전량해전에서 원균이 아군을 버리고 도주하였고 조선 수군의 300여척의 전함이 사라져버렸고 수군의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다시 이순신 장군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함성이 소실되고, 남해의 제해권이 왜군에게 넘어가버린 최악의 상황이 되버렸습니다.이에 조정에서는 수군을 해산하고 육군으로 편입하는게 어떠냐는 장계가 내려왔습니다.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싸우기로 결심하고 장계를 올렸습니다.
'지금 신에게 아직 열두 척 전선이 있사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않았으므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것입니다'
수많은 왜군과 마지막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
과연 이순신 장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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