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버지는 불라국을 다스리는 오구 대왕입니다. 오구 대왕은 길대 부인과 혼인을 언제 하는 게 좋을 지 갈이 박사에게 점괘를 받았습니다. 오구 대왕은 갈이 박사에게 올해 혼인을 하면 7명의 공주를 낳지만, 내년에 결혼하면 세자대군을 낳는다는 점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오구 대왕은 아무리 점괘가 용하다 한들, 하루가 한달 같은데 어떻게 내년까지 기다리냐며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혼인을 한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은 점괘대로 내리 여섯 명의 딸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구 대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오히려 귀하게 기르자고 이름까지 정성스럽게 지었습니다.
하지만 일곱 번째 자녀를 가졌을 때는 달랐습니다. 길대 부인은 청룡과 황룡이 나타나고 오른손에는 보라매, 왼손에는 백마를 받아 보이고 무릎에는 금 거북이가 앉아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구 대왕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일곱 째도 공주였습니다. 이번에는 세자가 태어날 거라 기대했던만큼 실망도 컸던 오구 대왕은 한탄하며 이 아이를 버리라 명했습니다. 길이 부인은 탄식하며 그래도 혈육인데 버리지 말고 자식이 없는 신하에게 양녀로 주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구 대왕은 길이 부인의 말을 귀뜸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버려도 버릴 것이요. 던져도 버릴 것이니 바리데기라 지어라” 오구 대왕은 어차피 버릴 자식, 이름 지을 필요가 없다며 옥함 속에 비단 옷감을 넣고 옷고름에 별명과 생월일시를 새겨 강물에 띄워서 버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석가세존은 당신을 구해주었고,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노부부에게 수양딸로 삼으라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어렸지만 비범하고 총명했습니다. 어느 날, 친부모가 따로 있음을 깨달은 당신은 할아비와 할미에게 자신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노부부는 이리저리 둘러대면서 대답을 회피했지만 당신의 논리적인 반박과 집요한 질문에 결국 당신이 담겨온 옥함과 비단 옷감 그리고 옷고름에 새겨진 이름과 생월일시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은 그 자리에서 비단 옷감을 손에 움켜쥐고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당신은 옥함과 비단 옷감만으로도 친부모가 누구인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림받은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친부모에게 자신을 왜 버렸는지 물어보고 싶었던 당신은 옥함과 비단 옷감, 그리고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진 옷고름을 챙겨들고 노부부와 함께 궁궐로 향했습니다. 궁궐 밖을 지키는 병사가 길을 막고는 얼른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지만 당신은 병사에게 가져온 물건을 보여주며 아바마마가 버린 딸이 스스로 찾아왔다고 전해달라 하였습니다. 당신이 들고 온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란 병사는 순식간에 궁궐 안으로 갔다 오더니 당신을 궁궐 안으로 안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친부모와 여섯 공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올린 당신은 옥함, 비단 옷감 그리고 옷고름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이 버려진 딸임을 증명하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딸과 마주하는 순간이었음에도 오구 대왕의 기분은 썩 탐탁치 않았습니다. 오구 대왕은 당신을 오히려 오랫동안 숨겨온 치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지고 온 증거가 있으니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여섯 공주의 속마음도 오구 대왕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물려받을 몫을 두고 서로 다투는 사이였지만 갑작스럽게 당신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몫마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명분도 없이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당신과 노부부가 궁궐에 지낼 수 있도록 하였지만 오구 대왕과 여섯 공주는 당신을 쫓아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며칠 후, 오구 대왕은 당신에게 정말 자신의 딸이 맞다면 시험을 통과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은 안개산 속 깊은 곳에 피는 낭화라는 꽃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안개산은 안개가 자욱하여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갈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한 산이었고, 낭화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전해지는 꽃으로 평생 구경해보기도 힘들 정도로 희귀한 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시험이 자신을 내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버려진 이유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꽃을 가져오면 자신을 버린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달라고 청하였고 오구 대왕은 그 청을 승낙했습니다. 당신은 낭화를 찾기 위해 안개산 깊은 곳까지 들어갔지만 도저히 낭화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욱한 안개가 당신이 지나온 길을 가려버린 탓에 돌아가는 것조차 막막해졌습니다. 당신이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어디선가 형형색색의 나비가 나타나 당신의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당신은 나비를 바라보다 무언가에 홀린 듯 나비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나비를 따라간 당신은 낭화를 발견했고, 나비의 도움을 받아 안개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낭화를 들고 오구 대왕과 길대 부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도록 계획했고 아직도 산 속 깊은 곳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구 대왕과 여섯 명의 공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은 약속했던 대로 왜 자신을 버리게 되었는지 오구 대왕에게 당당하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오구 대왕은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신하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대로 당신에게 버린 이유를 말하며 사과까지 했습니다. 이유를 들은 당신은 편전 밖으로 나오면서 눈물을 흘렀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당신을 버린 것에 상실감을 느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때 똑같이 밖으로 나온 여섯 명의 공주들은 신하들의 눈치를 살핀 오구 대왕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벌써 도착할 리가 없다며 보기도 힘든 낭화를 들고 온 당신에게 무슨 꾀를 쓰고 속임수를 썼느냐며 따졌습니다. 한 번은 오구 대왕의 부름에 편전에 가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며 추궁을 하며 괴롭혔습니다. 당신은 그냥 동생으로 지낼 수는 없냐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지만 공주들은 혀를 차며 동생은 무슨 얼른 궁궐 밖으로 나가라며 핍박을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결국 당신은 궁궐 안은 자신을 반겨 줄 사람이 없다는 것과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가 없는 현실을 깨닫고 노부부와 함께 다시 궁궐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당신은 노부부와 함께 궁궐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다급하게 숨을 몰아내시며 당신을 찾아온 한 신하는 오구 대왕이 다들 편전에 오라고 명을 내렸다 전했습니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인사도 드릴 겸 편전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는 갈대 부인과 공주들 뿐 만이 아니라 그 동안 못 보던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오구 대왕은 여러 종류의 약을 먹어도 병이 호전되지가 않는다며 오직 저승을 지키는 무장승이 갖고 있는 약수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물론이며 여섯 명의 공주들까지 오구 대왕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별의 별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모습에 오구 대왕은 크게 실망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당신은 손을 번쩍 들고 약수를 구하고 돌아오겠다고 오구 대왕에게 말했습니다. 오구 대왕은 다른 사람들은 나서질 않는데 어찌하여 손을 들고 나서냐며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런 질문에 당신은 대수롭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한 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인데 감히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에 크게 감동한 오구 대왕은 당신에게 신비한 힘이 있는 낭화를 주었고 낭화를 건내 받은 당신은 저승으로 향했습니다.
당신은 우여곡절 끝에 저승문에 있는 석가세존을 만났습니다. 석가세존은 당신을 보자마자 몇 년 전에 강물에 옥함이 떠다니고 있던 아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당신은 석가세존에게 낭화를 보여주며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석가세존은 금주령을 당신에게 건내주고는 죄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 낭화를 흔들고 넓은 바다에 도착했을 때엔 금주령을 바다 속에 던지라는 당부를 건냈습니다. 저승에 도착하니, 여러 지옥들이 드 넓은 들판처럼 펼쳐져 있고, 하늘까지 닿은 칠성이 눈 앞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당신은 석가세존이 당부했던 그대로 낭화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에게 구제를 원하는 죄인들의 모습이 나타났고 당신은 염불을 외우며 죄인들을 사후세계로 보내주었습니다. 그 다음 도착한 곳은 배가 한 척도 없는 넓은 바다였습니다. 당신은 주머니 속에 금주령을 꺼내 바다 속에 던졌고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나타나 다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당신은 나비들을 발판 삼아서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고 나비들을 따라가니 저승을 지키고 있는 무장승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장승은 왼손에는 낭화를 들고 있고 주변에는 나비들과 함께 있는 당신을 쳐다보았습니다. 어찌하여 힘들고 먼 곳까지 오게 된것이냐고 묻게 되었고 당신은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무장승에게 전달하며 약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한 무장승은 흔쾌히 약수를 당신에게 건내주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혹여나 위험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며 무슨 일이 있으면 부채를 사용하면 된다며 부채를 선물했습니다. 당신은 은혜는 꼭 잊지 않겠다며 약수와 부채를 받았습니다.
돌아가는 동안 당신은 수 많은 죄인들과 망령들에게 낭화를 흔들고 염불을 외우며 사후세계로 인도했습니다. 저승길에서 돌아온 당신은 약수를 손에 움켜쥐고 궁궐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여섯 명의 공주가 수 많은 병사들과 함께 길을 막았습니다. 또 어떤 속임수를 썼냐면서 약수를 주지 않으면 여기서 죽는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당신은 곱게 보내줄 수는 없냐고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병사들은 점점 더 가깝게 당신에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은 무장승이 선물했던 부채를 펼치며 흔들자 바리 주변을 맴돌고 있던 영혼들이 나타나서 병사들과 공주들을 잠재우며 도와주었습니다. 당신은 오구 대왕에게 약수를 건내주었고 오구 대왕은 거짓말처럼 약수를 마시자 병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효심과 용감함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오구 대왕은 당신에게 나라의 절반을 원하냐고 물었지만 당신은 거절했습니다. 그렇다면 재산의 절반을 원하냐 물었지만 그 또한 거절한 당신은 자신을 키워주신 노부부에게 집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오구 대왕은 흔쾌히 수락하며 앞으로는 궁궐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당신은 저승에서 영혼들을 인도하는 신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스스로 부모의 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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