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제는 언제나 잠들기 전 부모님에게 무림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산을 무너트리고, 검기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해 적을 추풍낙엽으로 만드는 이야기는 검제를 다른 아이들처럼 무공을 배워 강호에 출두하는 꿈을 꾸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검제의 부모님은 가난 했기 때문에 검제를 수련관에 보내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검제는 꿈을 버리지 않고 남몰래 수련관의 담 너머를 훔쳐보며 무공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검술은 검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도해주는 사범님이 없으니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도 없었고, 자세한 것도 알 수 없었으며 이 자세가 맞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답답했습니다.
검제는 가난한 살림을 돕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산에 나물과 약초를 채취하러 다녔었습니다.
검제가 살던 곳 근처에는 무당파의 근거지인 무당산이 있었고 평소 그곳에 올라가면 비싸게 팔 수 있는 약초들을 캘 수 있는데 어느 날, 검제는 약초를 캐러 산에 올라갔다가 커다란 호랑이와 마주쳤습니다.
검제는 혼비백산하여 약초주머니들을 내던지고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검제는 그만 낭떠러지에 도달했습니다. 낭떠러지 옆에는 폭포가 흐르고 있었고 그 아래는 깊은 못이 있었으며 검제는 살기 위해 냅다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겨우 물에서 빠져나온 검제가 절벽 위를 바라보니 호랑이가 여전히 살기등등하게 당신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에 기겁한 검제는 호랑이가 갈 때까지 숨기 위해 폭포 뒤의 동굴로 피신하기로 했습니다. 동굴 입구 근처에 앉아있던 검제는 문득 안쪽에서 향긋한 꽃 냄새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꽃 냄새와 상쾌한 향기에 이끌린 검제는 동굴 안쪽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한참을 기어들어가던 검제는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 눈을 꼭 감았습니다. 잠시 뒤 실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니, 맑은 하늘과 빛나는 태양,커다란 복숭아나무와 아름다운 정원, 작은 정자와 소담한 초가집이 보입니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광경에 놀란 검제는 멍하니 서서 계속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뭐 하느냐 이놈아. 얼른 들어오지 않고"
그리고 초가집 문을 열고 나온 도복을 입은 청년이 검제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합니다.
"에..저…저요?"
"그럼 여기에 네놈 말고 또 있느냐?"
어리둥절해 하는 검제를 질질 끌고 가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검제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청년은 이 바보 같은 놈이 망각의 물을 마셨으니 이렇게 늦었다는 둥, 웬수같은놈 이라는 둥 신세 한탄을 하더니 검제를 정원의 연못에 휙 던져 버립니다. 물이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면서 묵은때까지 씻어내는 것 같은 개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기억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인 검제는 그 기억들을 전부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주 일부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검제는 본디 신선이었고 세상에 혼란과 멸망을 초래할 마왕의 재림을 막기 위해 혼백이 떠난 인간의 몸에 빙의하여 인간계에 강림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저승사자의 실수로 환생의 문을 통과 해버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모든 기억과 깨달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혼백만 신선인 반쪽 자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쌓아온 내공도 전부 잃어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검제는 다시 수련으로 내공을 쌓고 다시 높은 경지에 올라 마왕을 격퇴해야 합니다.청년은 선계에서도 둘도 없이 지낸 친구로 검제를 돕기위해 특별히 파견되었습니다. 아무튼, 검제는 선계의 물로 몸의 탁기를 전부 몰아내 혈맥이 아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검제는 청년의 도움을 받아 다시 검술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내공심법을 익히고, 단전에 정순한 기를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검제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차근차근 경지를 쌓았지만, 기억이 사라진 탓인지 그 과거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청년과 검술 대련을 하는데 너무나도 정직 하게 검법을 구사해 초식이 전부 읽혀서 처참히 패배했습니다.
분해하는 검제에게 청년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선계의 시간은 원래 인간계보다 느리게 흐릅니다. 이곳에서의 한 시간이 인간계에선 하루가 지나있죠. 청년과 수련을 하며 10년이나 흘렀습니다. 검제는 17세의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났습니다. 경지가 오르고 올라, 검제가 검강을 뽑아낼 수 있게 되자 청년은 더는 이곳에 있어 봤자 의미가 없다며 검제를 쫓아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동굴을 나와 원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인간 세계의 시간은 수백 년이나 흐른 뒤네요. 검제의 집이 있던 곳은 누군가의 밭이 되어버렸고 시간차를 생각하지 못한 검제는 따지려고 다시 동굴 이 있던 폭포로 돌아갔으나 그 동굴은 꽉 막혀있습니다. 갈 곳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검제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검제는 청년이 말했던 대로 마왕의 재림을 막기 위한 힘을 기르고 어릴적의 꿈도 이룰겸 강호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로 합니다. 검제가 가진 거라곤 마왕과 싸울 때를 대비한 신검합일 두 자루의 검과 검을 들고 싸우는 일이기 때문에 표국에 취칙해 호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검제는 딱히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건 아니므로 동료들에게 별종으로 취급받았지만, 밝은 성격 덕분에 금방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검제처럼 어딘가에 거처가 있지 않고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라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표사일을 하던 중 검제는 어디선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움직인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마왕의 재림인가 싶어 소문의 근원지에 대해 수소문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서 부린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도는 곳은 전부 다 가봤습니다. 그러던 중 강호의 문파들이 의문의 사파에게 습격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검제는 그 습격자들에 대해 조사해보았습니다. 습격당했던 문파는 풍비박산이 나있으며 사악한 기운이 남아있었습니다. 검제는 그 의문의 사파에 대해 알아보던 도중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파의 수장은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고 스스로를 '마왕'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도 했습니다. 검제는 사파를 처단하기 위해 무림맹에서 결성한 결사대에 들어갔습니다. 결사대들과 함께 사파의 본거지에 쳐들어갑니다. 그곳엔 정말로 죽은 자들이 걸어 다니고 살아있는 사람을 습격했습니다. 개중엔 무공이 뛰어난 강시들도 있었지만, 검제의 이기어검에 전부 추풍낙엽이 되어 쓰러집니다. 모든 수하들이 죽자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마왕은 검제가 선계에 있을 적 친구라는 청년과 너무 닮았습니다. 그러나 눈에선 붉은 빛이 나고 사악한 기운이 온몸에 넘쳐 흘렀습니다.다른 결사대원들은 청년의 손짓 한번에 우수수 쓰러져버립니다. 선계의 기운을 가진 검제만이 그에게 대적할 유일한 상대입니다. 충격도 잠시, 검제는 마음을 다잡으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마왕을 처단하기 위해 검을 들었습니다. 마왕은 강했지만, 검제도 그만큼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기때문에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널린 검을 내공으로 조종해 날려 효과적으로 마왕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의 시간이 길어지면 상대적으로 내공이 부족한 검제가 불리해질 게 뻔했습니다. 검제는 마지막 남은 내공을 끌어올려 마왕에게 달려들어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마왕의 몸에 있던 마기가 신검에 몰려들어 봉인되었고 마왕은 검제에게 검을 알려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청년은 자신을 막아줄 사람이 필요했었다고, 고맙다고 말한 뒤 숨을 거뒀습니다.
그 마지막 싸움을 지켜본 사람들은 검의 제왕이라고, 검제라고 불렀습니다.
속세에 대한 모든 욕심이 사라짐과 동시에 육체의 속박에서도 벗어나 우화등선을 한 검제.
모든 게 덧없음을 깨달은 검제의 칼 끝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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