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날의 전투를 잊지 않겠습니다.. | |||||
작성자 | 대위5꼽으면퇴마하든가ㅉ | 작성일 | 2016-06-29 23:15 | 조회수 | 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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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이 안 올려지네요 죄송합니다] 2002년 6월 29일, 한일 월드컵 3.4위전 터키와 대한민국의 경기가 있던 날, 선수들은 경기 시작전 손을 올리고 묵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수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전국에 생중계가 됬고, 뉴스로도 나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전투'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전투는 바로 제2연평해전이었던 것입니다. 터키와의 3.4위전이 있던 그날의 아침, 연평도를 수호하던 참수리 357호와 358호는 북한의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것을 발견하고 즉각 경고신호를 날렸습니다. 수차례의 경고에도 돌아가지 않자 더 가까이 붙으려던 357호를 북 경비정 684호가 조타실에 기습포격을 했고, 이로 인해 윤영하 정장[당시 대위]가 부상을 입고 즉사했습니다. 그 옆을 지키던 이희완 부장[당시 중위]는 전사한 정장을 대신해 지휘를 하였습니다. 또 조타실에서 배를 조종하다 포격을 맞고 중상을 입은 한상국 조타장[당시 중사]은 박동혁 의무병[당시 상병]의 의사도 거부하고 끝까지 배를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배를 운항하다 또 다시 총상을 맞고 전사했습니다. 사수인 조천형 사수[당시 하사]와 황도현 사수[당시 하사]는 미니건을 발사하는 포장 안에서 사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천형 사수는 포격을 맞고 산화했고 황도현 사수는 머리에 직격탄을 맞아 즉각 전사했습니다. 또 한명의 사수, 서후원 사수[당시 하사]는 갑판 한가운데에서 사격을 하다가 여러번의 포격과 총상을 맞고 산화하였습니다. 또 한명은 사수가 아닌 의무병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박동혁 의무병은 조타실, 휴게실, 침실, 갑판을 왕복하며 전우를 살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고 그 후 국군수도병원에서는 그의 몸에 100여발이 넘는 총알이 발견되었습니다. 박동혁 의무병은 전투에서 전사를 하지는 않았으나, 6월에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지고 몇 달 후에 사망했습니다. 2015년 6월에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은 제가 말한 상황을 영화로 만들어냈습니다. 그 날 357호의 이 6명이 목숨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북한이 어떻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아버지의 지인은 제1연평해전을 겪으셨는데요... 그 현장은 참혹했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잊지 않는 전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퇴마 내용 정리한 이:퇴마 브금 출처:브금저장소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