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소설] 데스나이트. 검은 성의 소녀 上 | |||||
작성자 | 대위5시타르 | 작성일 | 2013-08-13 12:07 | 조회수 | 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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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꽃들이 가볍게 이는 바람에 흔들거린다. 밝은 햇살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꽃들 사이에 조심스레 앉아있는 어떤이가 보인다. 실력있는 재봉사의 손을 거친듯한 연한 분홍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드레스는 소매나 치마 끝자락 등 이곳 저곳이 보기좋게 레이스와 프릴로 장식되어 있어 입고있는 이에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있는 사람은 조금 어려보이는 소녀였다. 소녀는 한송이,한송이 아름답게 핀 꽃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미소짓고있었다. 연분홍빛이 도는 자그마한 입술과 아직은 성숙함을 찾을 수 없는 부드러운 두 뺨. 그 위로 사랑스럽게 빛나고 있는 자주색 눈동자를 바람에 나부끼는 검고 긴 머리칼이 이따금씩 가리었다. "시아야?" 그 모습을 먼발치 나무에 몸을 기대어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소녀와 같은 흑발. 남자의 머리 치곤 조금 길지만 지저분하지 않게 뻗친 머리는 보기좋게 자라있었다. 가지런한 눈썹. 선량해 보이는 동그란 눈매에 자주색 눈동자. 부드러운 미소가 어울릴것만 같은 입술이 열리며 새어나온 목소리에 꽃들에게서 시선을 때지않던 소녀가 젊은이를 향해 고개를 빙글 돌린다. '시아' 그것이 아마 소녀의 이름이리라. "오빠!" 소녀는 방금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 끝자락을 쥐고 꽃밭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소중한것을 손에 쥐듯 포근하게 소녀를 안아올리는 두손. 젊은이는 소녀와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나 없는동안 잘 지냈어?" "응! 아버님이 시아가 착하게 지내면 세피오빠 빨리온다고 하셔서 시아 착하게 잘 있었어!" 조그마한 두손을 양 볼에 대며 부끄러운듯 시아가 말했다. 젊은이는 소녀를 내려놓고 그녀의 조그마한 손을 잡았다. "그랬구나. 시아는 착한아이구나? 그럼 아버지한테 같이 갈까?" "응!" 꽃들이 하늘하늘 춤추고있는 그곳을 뒤로하고 두사람은 좁은 길을 사이좋게 걸었다. 이곳저곳이 세밀한 조각으로 장식된 그 방은 서재인듯 했다. 커다란 책장에 책이 그득히 채워져 있었고 넓은 테라스를 뒤로 한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잉크와 깃팬,종이 몇장만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서 벌떡일어나 세피르를 끌어안는 남자가 있었다. "내 아들 세피르! 무사히 돌아왔구나! 이 아버지는 몹시 자랑스럽단다!" "예. 아버지. 중앙 7군단 군단장 세피르 크라임. 가문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나저나 아버지. 여전히 건강하신것 같아 보기좋네요." 세피르는 미소지으며 아직까지 끌어안고있는 아버지를 조심스레 때어냈다. "하지만 무슨일이세요 아버지? 편지로는 할수 없는 말이라고 직접 부르시다니..." "그렇구나...일단...시장하지는 않니? 우선 함께 식사부터 하고 얘기하자꾸나."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는것을 세피르는 놓치지 않았다. 세피르의 아버지. 폰 크라임은 쓰고있던 안경을 벗어 책상위에 내려놓고는 단정하게 정리된 짧고 검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세피르의 등을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달그락,달그락' 시아는 아직 나이프를 사용하는것이 서투른탓에 한동안 접시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세피르가 나이프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썰어주자 그제서야 시아는 오빠를 보며 빙긋 웃음지었다. 넓은 식당 안. 긴 테이블에 앉은 세사람은 이따금씩 소소한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고있었다. "그래. 수도에서의 생활은 어떠냐. 불편하지는 않고?" "네. 다만 집이 가끔 그리워지는 불편함 정도는 있었어요." "시아도! 오빠가 없어서 불편했어!" "하하! 나이프를 못써서 불편했겠지!" 세사람은 행복하게 웃었지만 아버지인 폰 크라임은 어느새 아까보였던 표정을 잠시 비추었다가 이내 다시 미소지었다. "최근 중앙에서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단다." 식사가 끝난 뒤 시아를 방에 돌려 보내고 세피르와 폰은 서재의 테이플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놈들은 우리 크라임 가문의 업을 알고있었어...그걸 노리고 왔었다." "업이라면..." "아...그래...5대 크라임. 자일의 책을 요구하더구나..." 자일 크라임. 그 자가 살아있던 시기는 전란의 시대였고. 가문을 지키기 위해 그는 모종의 마법을 연구했으며. 결국 연구는 성공에 이르러 가문은 역사를 지나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문을 지켜낸 자일은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하고야 말았다는 말과 가문에 자신이 했던 연구의 모든것이 담긴 책만을 남긴채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본디 그 책은 가문에서도 소수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책... 지금은 가문이 지키고 있는 그 책을 어찌 중앙에서 알고 찾아온 것일까요..." 세피르는 식어버린 찻잔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완강히 거절했지만 중앙이 이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을터... 게다가 대치중인 나라가 대국 카디안인 만큼 전세를 압도할 새로운 힘을 물색하고 있을테지... 아마 그때문이라도 중앙은 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게다..." "걱정마세요 아버지. 제가 중앙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물론 가문의 사람이 하는 말. 귀기울여 주지는 않겠지만 7군단의 군단장이 하는 말이라면 가벼이 흘려 듣지는 못하겠지요." 세피르는 찻잔을 내려놓고 폰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 고맙구나 아들아. 가문의 업은 가문을 지키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모조리 태워버릴 불길이 될뻔하였다고 했다. 결코 그렇게 쉽게 생각해선 안될 이야기야..." 폰은 테라스의 창을 열고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켰다. 이상하리만치 기분나쁜 정적이 창밖으로부터 스며들어오는듯 하였다. |